[세계Tower]이산가족, 인터넷 상봉을  
세계일보  2001-03-03  06면  (독자)  40판  칼럼.논단  1994자 
얼마전 `프루프 오브 라이프`(Proof of Life)란 영화를 봤다. 미국의 댐 건설 엔지니어가 남미 반정부 테러집단에 인질로 잡혔다가 납치협상 전문가의 도움으로 풀려난다는 이야기를 박진감 있게 다룬 영화이다. 영화의 타이틀인 `프루프 오브 라이프`는 납치극 협상에서 사용하는 전문용어로 `인질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를 의미한다.
납치범들이 인질을 이미 죽여 놓고도 살아있는 것처럼 속여 몸값을 받아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요구하는 `프루프 오브 라이프`에는 △인질과 녹음이 아닌 생(生) 통화 △최근 발행된 신문을 배경으로 인질을 찍은 사진 등이 포함된다. 협상이 잘 안돼 납치극이 장기화될 경우 인질과 그 가족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세상의 온갖 범죄 중에서 납치야말로 가장 비인도적인 범죄라고 할 만하다. 
서울과 평양에서는 엊그제 제3차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져 또다시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분단 이후 50여년간 서로 생사를 모른 채 살아온 이산가족의 눈물겨운 재회. 긴 세월 희망을 버리지 않고 기다린 끝에 확인된 `프루프 오브 라이프`이니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감격이고 충격이다. 이번 상봉에서는 특히 1969년 KAL기 스튜어디스로 근무중 납북됐던 스튜어디스가 50대 주부로 변해 어머니와 재회하고, 6.25때 인민군의 포로가 됐던 노병이 김일성 훈장을 가슴에 단 채 남쪽의 동생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TV 시청자들의 마음을 에게 했다. 
한국처럼 분단-전쟁을 겪거나 실종-이별 등의 이유로 가족과 연인 친구가 생이별을 한 경우 사람 찾기 사업은 대개 `생사-주소확인→서신교환→상봉→재결합`의 순서로 추진되는 게 보통이다. 남북한의 이산가족 방문단 상호교환사업은 생사확인→상봉이 동시적으로 이뤄지면서 그 중간과정에 있어야 할 주소확인-서신교환이 생략된 `기형적인` 모습이다. 
가장 큰 문제는 매번 100명씩 제한된 인원의 상봉만 허용된다면 도대체 그 많은 이산가족이 생전에 재회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냐는 점이다. 이산가족이 100만명이니 한달에 한번 100명씩 빠짐없이 상봉이 이뤄져도 1년에 1200명, 800여년이 소요된다. 비용도 문제다. 1차 때는 정부가 비용을 전액 부담하고 시계 등의 선물까지 마련해 주느라 18억7000만원이 들었다. 한명당 1870만원이 든 셈이다. 2차 때는 생활보호대상자 등에만 50만원씩 지원하고 영세민 항공료 반액지원 등으로 절감했으나 경비가 6억3000만원, 한명당 630만원이 들었다. 3차때 비용도 5억∼6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래서 오는 15일 남북한 양측에서 생사-주소가 확인된 이산가족 300명씩 첫 서신교환을 하게 된 것은 이산가족 상봉사업에 큰 전기(轉機)로 평가할 수 있다. 생사-주소확인과 서신교환 사업은 계속 확대해야 하고 상설면회소를 판문점 일대에 설치, 부담없이 상봉할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해야 한다. 
이와 함께 당장 시급한 생사확인을 위해 인터넷을 적극 활용할 것을 당국에 제안하고 싶다. 21세기는 인터넷 시대다. 인터넷으로 쇼핑, 학업, 정보수집, 영화감상 등 못하는 게 없다. 특히 한국은 인터넷 선진국으로 인터넷 인구가 2000년말 현재 2000만명, 전체 인구의 42.3%를 차지하고 있다. 
북한도 아직 주민들이 자유롭게 인터넷을 이용할 수는 없지만 기술면에서 수준급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현재 윈도 2000 환경에서 사용하는 조선어 입력체계, 번역소프트웨어, 인터넷 서비스 시스템의 개발을 마쳤으며 인터넷 서버를 일본 중국 등 제3국에 두고 시험운영을 하고 있다. 
한국이 북한의 인터넷망 확충사업을 지원할 경우 인터넷을 통한 생사-주소확인과 화상상봉-서신(e메일)교환 사업이 훨씬 능률적으로 이뤄질 것은 불문가지다.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하루에 2시간 이상 인터넷 서핑을 하는 인터넷 마니아라고 한다. 김 위원장은 날마다 이산의 한(恨)을 풀지 못한 채 병석에서 신음하고, 또 숨져가는 70-80대 이산가족의 고통을 생각해서라도 전시적인 호텔상봉 대신 인터넷 자료교환 및 상봉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 劉又根 <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