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납북자 명단만이라도 확보해 달라` [조인스]

[출처=한국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아흔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아버지 얘기만 나오면 눈시울을 붉히세요. ‘너희 아버지 같이 자상하고 좋은 사람도 없단다’고 하세요. 아버진 아내와 자식들에게 자상하고 책을 무척 좋아하신 분이셨어요. 6·25가 일어난 지 석달이 채 안된 50년 9월 4일 ‘정치보위부 류 소좌’라고 밝힌 사람이 잠시 조사할 게 있다며 안방에 있던 아버지를 데리고 나간 후 돌아오지 않으셨어요”.

6·25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미일(59·사진) 이사장의 사무실 한켠엔 신혼시절 부모님의 흑백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는 후천성 척추장애의 몸에도 불구하고 2000년 협의회 조직 후 8년간 침묵 뿐인 정부를 상대로 전시 납북자의 진상조사와 생사확인을 촉구해오고 있다. 정부의 무관심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2006년 회원가족 14명과 함께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가 지난 2월 패소했다. 그러나 지난 3월 다시 배상금액을 대폭 낮춰 1인당 58원 배상을 요구하며 항소했다.

-협의회는 어떻게 조직하게 됐나?

"납북자라고 하면 정부에서 전후 납북자만 언급하고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납북자 문제는 철저히 외면해왔다. 통일부 ‘북한인권백서’에도 전후 납북자 규모만 기술되어 있었다. 한국전쟁 때 8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북한군에 의해 납치됐지만 이들의 존재는 인정되지 않았다. 한국전쟁 납북자 명부만 하더라도 통일부 등에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없다고만 하고 협조해주지 않았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자구책으로 피해 가족들을 모아 협의회를 구성했다. 정부가 외면하니 내가 나선 것이다. 납북자는 전후 납북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과는 있었나?

"정부가 없다고 하던 납북자 명부들을 스스로 찾아냈다. 한국전쟁 발발 초기이던 50년 12월 공보처 통계국에서 작성한 ‘서울특별시 피해자명부’를 고서 수집가에게서 400만원 주고 샀다. 당시 공무원이 납북자의 이름과 직업, 날짜, 약력 등 항목별로 손으로 기록한 것인데 기록의 꼼꼼함에 놀랐다. 자료라곤 아무것도 손에 쥔 것이 없던 시기에 처음으로 찾은 것이어서 내겐 ‘보물 1호’나 다름 없어 현재 은행 개인금고에 보관하고 있다. 또 전쟁 중이던 52년에 정부가 발간한 8만3000명에 이르는 ‘6·25사변 피납치자 명부’를 찾았다. 정부 문서와 사료를 발굴해 2006년엔 전시 납북자 사료집을 펴냈다."

-정부를 상대로 배상하라고 한 금액이 왜 58원인가?

"당초 배상청구액은 원고 1인당 500~1000만원이었다. 소송을 맡은 변호사가 알아서 책정한 것이었다. 패소한 후 항소는 가족들이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직접 했다. 우리는 금전적인 배상을 원치 않는다. 정부에 전쟁 납북자들에 대한 진상조사를 원한다. 58년이 지나도록 정부가 전시 납북자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청구액은 6·25가 일어난 50년을 기준으로 1년에 1원씩 계산했다."

-가장 힘든 점은?

"피해 가족들은 연좌제로 고통 받았다. 공직 진출과 사관학교 입학이 봉쇄됐고, 국외여행에 제한을 받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것은 정부의 외면, 사회의 무관심이다. 전시 납북자 문제 해결은 국가의 의무이자 인권 문제로 이념의 문제로 접근하려 하면 안된다. 인권 문제는 이념을 초월한다."

-정부에 바라는 점은?

"가족들이 고령이어서 숨을 거두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전쟁 당시 납북자의 정확한 규모 파악이 가장 시급하다. 국민들을 상대로 신고를 받아 납북자 명단만이라도 확보해달라고 정부에 수없이 청원했다. 가족회가 최근에 직접 신고서 양식까지 만들어서 통일부에 제출했지만 정부는 여전히 손을 놓고 있다. 올해는 정부수립 60주년이다. 전시 납북자들은 대한민국 국적의 국민이다. 국가는 납북된 국민들을 잊어서는 안된다. 2006년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가족회에 약속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 전쟁 납북자 현황 파악과 특별법 제정이 속히 이뤄져야 한다."

김용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