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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회 하원 청문회 증언문(한글)
이름: 관리자
2006-05-17 10:56:03  |  조회: 7696
미국 국회 하원 청문회 증언문
(2006년 4월 27일 오전 10시)
사단법인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 이미일

먼저 미 하원 청문회에서 한국전쟁 납북피해사건에 대하여 처음으로 증언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 주신 의원님들께 경의를 표하며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북한의 납치 행위의 시작은 1970년대의 일본인 납치가 아니고 1950년 한국전쟁 중 대규모 남한 민간인 납치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휴전이 된지 반세기가 넘는 긴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입니다. 1952년 전쟁 중이었던 당시 대한민국정부가 작성한 전시 피랍치자 명단에는 82,959명의 인적사항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휴전이 된지 반세기가 넘는 긴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입니다. 한국전쟁 중 북한이 강제로 납북해간 아버지와 아들, 남편 등 사랑하는 가족들의 생사조차도 모르는 가혹한 납치의 비극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납북자와 남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수 십년 간 사랑하는 가족들의 소식조차 모르고 연로해지셔서 한을 품은 채 계속 세상을 뜨고 있습니다. 세계 어디에도 이토록 56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나도록 사랑하는 사람의 소식조차 모르는 반인륜적 반 인권적 피해 사례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한국전쟁납북자의 실태에 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받으신 자료를 참고하시고 저희 아버지의 경우를 좀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보시는 것처럼 키가 아주 작습니다. 목소리도 아주 작습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던 해 척추를 다쳐서 장애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열이 펄펄 끓으면서 앓아 누었던 그때 제 아버지는 이미 전쟁 중에 북한으로 납치되어 가고 없었습니다. 그때 제 아버지는 30대의 청년사업가였고, 어머니와 저희 딸 셋을 무척 사랑하셨습니다. 아마 의사였던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저는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전쟁이 끝나면 아버지를 만날 수 있으리라고 믿었고 그때 건강한 제 모습을 보여 드리기 위해서 절망하지 않고 저를 살려내셨다고 합니다.

제 어머니는 무척 아름답고 유능하신 분입니다. 지금도 역시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지난 55년 동안 어머니의 마음속에 유일한 사랑은 아버지뿐이셨고, 그래서 재혼하지 않고 지금도 아버지가 잡혀가신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미 84세가 됐습니다. 몇 년 전에는 stroke로 쓰러졌고 지금 언어와 거동이 자유로운 편이 아니지만 아버지의 생사를 확인하고 살아계시면 모셔오고 돌아가셨으면 유해라도 모셔오려고 이렇게 전쟁 피랍치자 송환운동을 하고 있는 저를 열심히 지원해 주고 계십니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잊고 산 적이 없습니다. 끊임없이 그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끔 아버지를 위해 이 일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저를 살려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까지 학교도 다니지 못했고, 제가 가고 싶은 중학교에서는 몸이 불편하다고 입학도 거부했지만, 저는 어머니의 희망을 먹고 살아났고, 또 제 어머니의 희망이 끝나지 않는 한 제 아버지도 살아오시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저는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제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듣기에 불편하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제 작은 목소리로 이곳 미국의 의회에서까지 제 아버지를 찾기 위해 증언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또 그 분의 힘에 의지해 이곳에 계신 의원 여러분들의 도움을 청하고자 합니다.

서울을 UN군과 국군이 되찾은 후 당시 제 어머니는 아버지 시체만 찾으면 딸 셋과 함께 죽겠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버지가 잡혀간 감옥에 갔을 때 감옥은 텅 비어 있었고, 아버지는 북한으로 끌려가신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시리라는 희망 때문에 어머니는 다시 살 희망을 가지셨고 그 힘으로 지금까지 살아오셨습니다.

여기 계신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들께서 제 아버지를 찾는 일을 좀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핵문제나 인권문제로 북한을 압박할 수도 있는 나라는 어쩌면 미국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미국과 유엔이 함께 도왔던 그 한국전쟁때 납치돼 북한으로 간 분들의 인권을 위해서도 미국이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남편을 빼앗기고 당시 남은 아내들은 경제 능력이 없어 눈물을 머금고 자녀들을 고아원에 맡겨야 하는 기막힌 상황에 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중에도 납치되어간 남편과 아들을 찾기 위하여 죽을 힘을 다해 노력을 하였지만 북한의 시종일관 ‘납북자는 없다’라는 말에 아무 성과가 없었습니다. 눈물과 땀과 피의 추억으로 얼룩진 인생은 우리 납북자 가족들 모두에게 공통된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우리 가족들이 아직도 납북된 그분들을 기다리고 있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다림은 언제나 절망을 이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 이 자리에 오는 것을 말렸습니다. 이미 옛날 이야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도대체 미국이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한에서 아직도 가족을 찾는 목소리가 이렇게 큰데 어째서 그 일들이 역사가 될 수 있겠습니까? 2002년 9월 북한의 통치자 김정일은 전쟁중 행방불명된 사람들을 찾아보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성과가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그 사람은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사람들이 합심하여 자국민들을 구출해온 일에 몹시 고무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절망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흔한 격언이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절망적인 기분이 들 때가 적지 않습니다. 가족들이 한 사람 한 사람 죽어갈 때입니다. 3년전에는 94세의 할머니가 아들을 기다리다가 돌아가셨고, 작년에는 남편을 기다리며 7남매를 홀로 길러낸 90세난 아내가 사랑하는 남편의 생사여부도 모른채 세상을 떴습니다. 이제는 아버지를 찾아 우리와 같이 활동하던 60대 70대 아들도 숨을 거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이 몹시 급해져서 작년부터 가족들의 증언들을 채록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의 마음이 결코 희망으로만 넘치지 않는 것은, 시간을 더 끌면 정말 우리는 결국 유해를 모셔오는 것말고 아무것도 할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92세난 노모는 납북 당시 학생이었던 아들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디 노모가 꿈에도 잊지 못하는 사랑하는 아들의 따뜻한 손을 만져보게 해 주십시오. 저는 제 아버지가 살아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제가 그 전쟁통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렇게 살아있다고 제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제 어머니가 얼마나 아버지를 사랑했고, 여전히 곱고 아름답지만 아버지만을 위해 살아오신 것을 아버지가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제 얘기는 그렇게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그 당시 끌려간 사람은 8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우리 한반도가 극단적 냉전의 격전지가 되는 바람에 우리 가족들은 북한에 가족을 두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남한 정부로부터도 감시와 차별을 받았습니다.

남한은 그동안 경제적으로도 민주적으로도 발전했으므로 이제는 그런 문제를 걱정하지는 않지만 선뜻 우리 문제를 인권의 문제로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우리 정부도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저는 희미한 빛이라도 보이는 곳은 열심히 달려갑니다. 제가 이 미국의 의회로 달려올 때는 그 어떤 때보다 강한 빛을 느꼈습니다. 미국 의회에는 적어도 하이드 의원과 같이 가족과 한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하나님의 경건한 종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미국은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어쩌면 제 아버지가 돌아오시는 날쯤에야 저 자신의 전쟁은 물론이고 한국과 미국, 그밖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피를 흘린 수많은 희생자들의 전쟁이 비로소 끝나리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아버지도 돌아오시고, 핵문제도 해결되며, 요덕과 같은 정치범수용소도 사라지는 그 날까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되시는 여러 의원들과 함께 열심히 일하고 싶습니다. 제 작은 목소리를 참아주신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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