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유선진당의 박선영 의원은 요즘 일본 측 고위인사들로부터 매일 면담 요청을 받고 있다. 지난 9일 일본인 납북 피해자 요코타 메구미(橫田めぐみ)가 최소한 2004년까지 살아 있었다는 주장을 한 후의 일이다. 북한은 메구미가 1994년 숨졌다며 그의 유해를 일본에 보낸 바 있다.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 주한 일본대사는 박 의원의 발표 후 두 시간 만에 그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무토 대사는 11일엔 국회를 방문, 박 의원을 만났다. 일본 공안위원장을 지낸 나카이 히로시(中井洽) 민주당 의원, 다케모토 나오카즈(竹本直一) 자민당 의원도 박 의원을 만나러 와서 메구미에 대한 정보를 물었다.

#2. 지난달 30일 기자가 도쿄에서 만난 스기야마 신스케(杉山晋輔)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의 양복 왼쪽 깃에는 하늘색 바탕의 배지가 달려 있었다. 무슨 배지인지 궁금하던 차에 6일 방한한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 일본 외무상의 양복에서 똑같은 배지를 발견했다. 일본인 납북자 구출을 위한 민간단체에서 만든 배지였다. 겐바 외상은 이 배지를 단 채 이명박 대통령과 김성환 외교부 장관을 만났다. 그리고 한국 외교관들에게 이 배지의 유래에 대해서 설명했다.

일본 고위 인사들이 앞다퉈 납북자 정보를 들으려 하고, 관련 배지를 달고 다니는 일본을 보면서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지금까지 납북된 일본인은 모두 몇 명일까. 겐바 외상과 함께 방한한 일본 외무성 대변인은 "현재까지 확인된 납북 일본인은 17명"이라고 했다. 6·25전쟁 당시 8만여 명 이상이 북으로 끌려가고, 그 후에도 500명 이상이 납북된 한국과 비교할 수 없는 수치다. 그럼에도 일본 사회는 납북자 문제에 대해 전(全)일본적인 관심을 기울여왔고, 이는 한국과 다른 교훈을 만들었다.

일본 내에는 적성국이나 테러단체에 의한 납치사건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 문제에 대해선 좌(左)와 우(右), 보수와 진보 사이의 견해차는 크지 않다. 일본에서 납북자 문제는 자국민 보호가 국가의 가장 큰 임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일본이 납북자 문제를 공론화하는 의도가 100% 순수하지 않다는 분석도 틀린 것은 아니다. 젊은 한국 남자는 강제로 전선(戰線)에 배치하고, 어린 여자는 일본군 성노예(일본군위안부)로 끌고 간 역사를 상쇄하려고 납북 피해를 강조하는 측면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의 악행(惡行)을 반성하지 않는 데 대한 비판과는 별도로 자국민을 보호하려는 일본 정부의 노력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 워싱턴 DC에서는 올해 두 차례 납북자 관련 회의가 열렸다. 두 회의에 모두 참가했던 미국 언론의 한 기자는 에 최근 이런 메모를 남겼다. "몇 달 전 열린 일본 납북자 행사 때는 주미(駐美) 일본대사가 참석해 연설했는데, 이번 한국 행사는 주미 한국대사관의 참사관이 대표로 연설했군요. 아직 갈 길이 먼가요?"

한국이 일본처럼만 납북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면 과연 '통영의 딸' 사건이 지금같이 전개돼 왔을지도 되새겨 봐야 한다./이하원 정치부 차장 May2@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