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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Daejung, who betrayed North Korean refugees
Name: Admin
2001-09-28 00:00:00  |  Hit 2163

Kim Daejung, who betrayed North Korean refugees


북한 망명자들을 배신한 김대중
 
이름 : 운영자     번호 : 109 
게시일 : 2001/04/15 (일) AM 07:10:36     조회 : 136  

한국에서는 글 쓸 수 없는 북한 망명자들을 배신한 김대중 
(주간문춘 2000. 11. 30)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이래, 불가사의하게 변하여 한국에서는 북한 문제에 대한 발언을 꺼리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서울에서 북한에서 망명한 두 사람으로부터, 다시 북한 실정을 듣게 된 것은, 노벨상 수상을 솔직히말해서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현실을 전하기 위해서 였다. 李大漢씨는(38세) 작년 6월에 중국을 경유하여 망명했고, 孫英澤씨도 작년 5월에 중국을 경유하여 망명했다. 
 李 금일, 이 자리를 찾아온 것은, 일본에 계신 여러분에게 북한의 실정을 조금이라도 알려드렸으면 하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孫 외국 매스컴이라면 정확히 보도해 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내가 왜 망명했는가를 말하기로 하지요. 
 나의 아버지는 한국전쟁에 종군하여, 미군의 포로가 되었는데, 停戰 3년 후에 돌아왔습니다. 포로 출신이기 때문에, 우리 一家는 사회적으로 소외당하여, 가난했습니다. 제 자신의 진학·입당 등의 길도 막혀 있었기 때문에, 17세에 군대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훈련은 치열했습니다. 매일 아침 5시 40분에 起床하여, 18㎏의 모래주머니를 짊어지고 1리(약 4㎞)를 달리게 합니다. 태권도 연습을 하고, 가까스로 朝食. 隊列 行進訓練 후, 2시간의 정치 학습이 있습니다.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말씀(語錄)을 암송하기도 하고, 주체사상을 공부합니다. 미국, 일본 및 南의 괴뢰정권은 인민의 적으로서, 철저하게 쳐부수어야 한다고 주입합니다. 生化學 武器나 放射能 武器의 훈련도 있습니다. 
 일본의 쌀 援助는 알지 못하다. 
 週 1회는 5里, 月 1회는 10里, 3개월에 1회는 100리(약 400㎞), 80㎏의 장비를 지고 행군합니다. 동계 행군은 특히 치열하였습니다. 
 자신을, 단지 김정일을 위해 싸우다 죽어 가는 정도의 존재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공허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다만, 나의 고향은 중국과의 국경에 가까운 곳으로, 때때로 중국의 정보가 들어옵니다. 한국이 굉장한 성장을 이루어, 北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풍부하고 자유롭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입대 10년에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98년 3월에 중국 국경을 넘었습니다. 조선족 마을을 전전하면서, 6월에 겨우 북경에 다다랐지만, 한국대사관으로 오는 도중에 공안경찰에 붙잡혀, 국경도시 們으로 호송 당했습니다. 
 們 수용소에서는 철저하게 조사를 받았고, 계속 구타를 당했습니다. 그 다음은 감옥으로 보내질 뿐인데 살아서 나온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그렇다면, 탈출을 시도하다가 맞아 죽는 편이 낫겠다 싶어 혼신의 힘을 다해 수용소로부터 탈출하여 간신히 망명에 성공하였습니다. 
 李 나도 군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선전활동을 담당하는 부서였기 때문에, 가혹한 훈련은 없었습니다. 
 나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해서 『人間의 證明』같은 日本 小說도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교육은 썩었기 때문에, 생각했던 대로 공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대주둔지에서는, 매일 눈이 온 것처럼 한국군의 삐라가 떨어졌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쓰여 있는 것이 반드시 거짓말 뿐만은 아니겠지」하는 확신을 갖고, 망명을 결행했습니다. 
 96년, 중국으로 탈출했습니다. 그러나 말은 통하지 않고, 이동도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중국으로 가기만 하면 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단 잠복한 다음, 大連에서 밀항선을 타려 했는데 실패했습니다. 公安에 잡혀, 40일간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저도 們으로 송치되었는데. 수용소에는 공안에 붙잡힌 북한 탈출자가 중국 전국으로부터 집결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8일간에 걸친 審問을 받았습니다. 그 후의 7일 동안도, 수족이 묶인 채 가혹하게 구타를 당하였습니다. 고문 끝에, 평양 근교에 있는 강제수용소로 향하는 열차에 실렸습니다. 그대로는 죽음을 기다리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에너지 부족 때문에, 열차 속도가 느립니다. 눈 딱 감고 차량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수갑을 찬 채로 국경을 넘어, 조선족 마을까지 험한 산악지대를 오로지 달렸습니다. 
 그곳에서 아는 女人의 도움으로 3년 동안 숨어 지내고, 작년 6월에 간신히 亡命한 것입니다. 
 孫 여기 와서 1년 반이 지났지만, 한국에서는 自己만 열심히 노력하면, 인생을 개척해 나갈 수 있습니다. 북에 남겨놓고 온 형제의 일을 생각하면 슬퍼지지만, 열심히 일해 성공해서, 언젠가 보답하고 싶습니다. 
 李 집단주의 사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개인주의사회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고생하였습니다. 돈이라는 개념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북에서는 생활 필수품은 전부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께서 하사하신 물품」으로써 배급받는 것뿐입니다. 말도 다릅니다. 나로서는 아직도 외국어로 들릴 때가 있습니다. 
 孫 (본 기자를 지그시 쳐다보면서) 이처럼 일본 분들을 만나는 것은 처음인데, 대단히 신기한 기분이 듭니다. 북한에서는 「일본인은 최대의 敵. 무조건 타도」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함께 식사를 하다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李 나는 元山에서 일본인 처 여러분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모두 친절하고 예의 바르고, 집에 있는 일본의 中古 家電製品은 북한 제품과는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품질이 좋았습니다. 학교나 군대에서 공부한 것과는 매우 다르고, 일본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했습니다. 
 - 92년부터 일본 정부가 쌀 원조를 개시하였는데, 기아 해소에는 도움이 되었습니까?
 孫 일본의 원조? 들은 적이 없습니다. 「김정일 장군의 배려」라는 배급은 있었지만 … 믿기지 않습니다. 
 TV는 마치 「평양방송」 
 李 북에서는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敵國」으로부터의 원조가 있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쌀 배급은 있었지만, 군 간부는 「김정일 장군이 자산을 조금씩 헐어서 구입한 쌀」라고 설명하였으며, 배급이 있은 곳은 軍隊뿐으로, 일반 가정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김정일은 북의 인민을 인질로 해서 군림하고 있습니다. 黨의 子회사는 김정일을 위해 송이나 광물자원을 해외에 파는 「충성 외화 획득」을 열심히 진행하고 있지만, 그정도의 외화를 갖고 있다면 쌀쯤이야 얼마든지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제대로 먹을 것도 주지 않아서, 굶겨 죽이고 있습니다. 
 孫 식량지원으로는, 절대로 북한은 변하지 않습니다. 통일을 앞당긴다거나 고통받고 있는 동포를 돕는 것이 되지 못합니다. 
 李 실은 96년 饑饉當時, 인민의 의식이 크게 동요하였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세간에 불만이 소용돌이 쳐서, 사회적 변화의 태동을 감지하였습니다. 그때, 김정일 정권은 정말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 김정일을 구한 것은, 바로 쌀지원이었습니다. 김대중은, 김정일에게 쌀을 바쳐 도와준 덕택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것입니다. 
 고향의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 것은 정말 참을 수가 없습니다. 북한이 지금 붕괴되어도, 20년 후에 붕괴되어도, 혼란의 정도는 같을 것입니다. 무조건적 식량원조로 대표될 수 있는 김대중의 「햇볕정책」은 김정일 체제의 붕괴를 지연시켜, 굶어죽는 희생자를 늘릴 뿐입니다. 
 孫 남북정상회담 후에, 김대중은 햇볕정책의 시비에 答하여「북한에 주는 식량 몫을, 외교에서 만회하겠다」고 말하였지만, 북으로부터는 아무 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고작 이산가족 100명의 만남 정도밖에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김대중은, 북한에서는 일반 서민과 당관계자 두 종류의 인종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직 혜택받고 있는 당관계자밖에 보지 못하고 정책을 논하고 있습니다. 일반 인민은 정말로 고통받고 있는 것입니다. 김정일과는 악수하면서, 왜 북의 民衆과는 악수를 하지 않는 것입니까. 
 李 같은 망명자라도 사람에 따라 생각이 아주 다르겠지만, 「김정일이 죽기까지 북한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한 가지만은 같습니다. 저는 망명자 친목회의 간부로 복무하고 있는데 회원 40명 전원의 의견입니다. 
 孫 심한 것은 한국의 매스컴입니다. 6월 14일의 남북회담 이후, 정황이 완전히 변해 버렸습니다. 회담의 모습을 전하는 TV의 아나운서는, 마치 평양방송 같습니다. 「북한의 실정을 알고서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항의하고 싶어졌습니다. 
 李 「한겨레」(대표적인 좌파 신문) 등은, 마치 북의 기관지 같습니다. 이같은 정황을 보게되면, 김대중이 추진하고 있는 한국의 "민주화"가 실은 가장 우려되는 것이 아닐까요. 친북정책이 착착 진행되고 있으며, 김정일을 돕고 있습니다. 그 덕택에 眞正한 意味의 民主化 - 북한인민을 도울 수 있는 정책을 바라는 소리는 압살되고 있습니다. 
 인권을 묻지 않는 「햇볕정책」
 - 당국으로부터 「북한비판은 안 된다」고 하는 압력이 있었던 것입니까? 
 李 노골적인 언론탄압은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만연되어 있는 "화해 무드"가 우리들 북한 망명자들의 입을 막고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괴이한 것은 이러한 현상이 있다는 것을 어느 매스컴도 보도하지 않습니다. 反政府를 장기로 하고 있는 「조선일보」조차 우리들의 의견을 써 주지 않습니다. 
 진보적 문화인들에도 같은 罪가 있습니다. 그들은 북한이 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화해`를 강조하는 確信犯입니다. 
 孫 김대중의 햇볕정책은 일본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 남북회담 성공, 한반도 긴장완화에 큰 성과를 가져 왔습니다.(주요 社說의   內容을 해설 하니, 두 사람이 마주 보면서失笑)」 
李 햇볕정책이 주효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김대중은 「햇볕정책」이라 말합니다만, 북한인민을 따뜻하게 비추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김대중은 「인권문제에 대해서는(김정일에 대해서) 요구하지 않는 것입니까? 진정으로 북한을 생각한다면, 독재에 고생하고 있는 민중의 인권문제를 맨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햇볕정책」은 북의 민중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노벨賞을 위해, 또는 정권연명을 위한 수단이 아닐까요. 
 孫 우리들 망명자들이 모이면 언제나 김대중비판이 됩니다. 지금의 한국정부 정책은 북의 민중의 고통을 증가시킬 뿐이라고. 김정일은 먼 장래까지 내다보고 있습니다. 김대중 정권이 끝날 때까지 할 수 있는 데까지 많은 것을 한국으로부터 빼앗아가려 하고 있을 뿐입니다. 
 李 북한 인민은 지금도 진심으로 전쟁을 바라고 있습니다. 전쟁에 이겨서 안락하게 지내자고 세뇌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북한을 변하게 하는 데는 方法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김정일이 죽는 것입니다. 김정일 체제마저 뒤집히면, 민중의 의식이 얼마간이라도 변할 것입니다. 저는 김정일에게 개인적인 원한은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생활해보니 지금까지 너무나도 속임을 당했다는 것에 정말 괘씸한 생각이 듭니다. 북의 민중이 저처럼 한국의 실정을 안다면, 김정일 정권은 틀림없이 붕괴될 것입니다. 그러나 김대중 덕분에, 김정일은 최대의 위기를 극복하고 말았습니다. 
 - 일본은 무엇을 바라는가 
 孫 단순한 식량지원을 해주는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기아에 고생하고 있는 민중에게는 절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보다는 농지개량기술을 지원해서 아래로부터 기아를 없애는 노력을 하는 편이 오히려 공헌 할 것입니다. 정말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쌀이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십시오. 이대로는 김정일만이 피둥피둥 살찌게 할뿐입니다.
 李 모리 수상이 「제3국에서의 납치피해자 발견」이라는 代案을 외국으로 흘렸다는 뉴스를 듣고, 정말 실망했습니다. 일본까지도 김정일의 책략에 놀아나고 있는 것인가 생각했습니다. 왜 김정일 비위맞추기를 하는 것인가, 한심스럽게 생각했습니다. 
 孫 한 번 더 반복하겠습니다. 일본 매스컴 여러분, 우리들의 소리를 들어 주십시요. 그리고 북한의 내부사정을 정확히 보도 해 주십시오. 
 김정일이 스위스 은행에 감춘 구좌 발견 
 한국을 대표하는 월간지 「월간조선」(조선일보사) 11월호에 『김정일의 숨겨 놓은 자산 43억 달러가 스위스 은행에 예금되어 있다』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되어 있어, 커다란 화제를 부르고 있다. 同社는 翼贊的 언론이 횡행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북한에 대하여 엄격한 눈으로 대하고 있는 언론기관이다. 
 조선노동당이나 군은 하부기관을 통하여 조직적으로 외화벌이에 여념이 없고, 획득된 외화는 더미(dummy) 구좌를 통해서 스위스 은행의 비밀구좌에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주목되는 것은, 관계자가 외화 획득의 실태와 김정일의 숨겨 놓은 자산에 대하여, 생생하게 증언했다는 것. 결론으로서, 「스위스에 있는 김정일의 자산은 약 43억 달러(약 4700억 엔)이라는 놀랄만한 숫자를 산출해 내고 있다. 
 월간조선을 발행하고 있는 조선일보사는 몇 안 되는 반정부계의 매스컴.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상을 수상하고 나서부터 말하는 , 한국 내에 있어서 북한 김정일 비판이 터부화 되어 있는 가운데서, 의연하게 절개를 굽히지 않고 있다. 
 기사를 쓴 것은 우종창 기자(43). 「전두환 前 대통령 쿠데타, 한국군 극비 통화 기록」(79년), 「김정일의 전처 一家의 망명」(96년), 등의 기사로 알려져 있다. 
 「취재의 계기는 북한에 납치된 인물의 미발표 회고록을 입수한 것이었습니다. 해외의 비밀구좌에 막대한 비밀자금이 예치되어 있다고 김정일 스스로가 말했다고 하는 것이 었습니다. 중국정부 관계자나 美정보기관 관계자 등 저의 독자적 루트로부터도 같은 내용의 얘기가 들어 왔기 때문에 즉각 취재에 착수하였습니다.」(禹기자) 
 부상되어 나오는 북한의 외화 획득의 실태는 놀랄만한 것이었다. 
 「조선노동당의 예산은 북한 국가 내각 예산의 약 1.5배나 됩니다. 노동당이 북한이라고 하는 국가 가운데서 또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동당 안에는 『39호실』로 불리는 특무기관이 있으며, 그곳에서 김정일의 개인자산을 관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39호실의 하부기관에는 「大成 貿易 總會社」 등 많은 무역상사가 있으며, 외화벌이를 하고 있다. 
 〈송이버섯을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는 회사도 있다. 연간 1400톤, 매상은 1억 달러까지도 된다. 금을 위시한 귀금속을 파는 상사는, 1톤당 900만 달러로서, 연간 10톤을 수출하고 있다.〉(기사에서) 
 사업은 김정일이 몸소 호령을 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으로부터의 망명자로서 전 북한군 육군대위 김선민씨가 증언하기를 「86년 6월 20일, 김정일은 인민무력부에 대하여 『외화획득을 적극적으로 하여, 예산을 조달해야만 한다』고 하는 호령을 걸었다.」고 했다.〉 
 〈보위사령부출신 조본일(43)씨는, 인민군 964부대의 중좌였다가, 최근에 망명하였다. 964부대는 보위사령부산하에 있는 중요한 부대인데, 김정일을 위시한 북한정부의 고관을 호송하는 것이 임무이다. 조씨는 북한북부의 군항 청진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외화벌이의 책임자였다. 
 964부대 소유의 잠수용 선박 4척을 멍게잡이를 하기 위하여 청진 외항으로 내보내서, 채취한 멍게를 일본으로 수출하였다 한다. 
 잠수함 한 척당 한사람의 군인을 태워서, 수심 15-20미터까지 잠수시켜서 멍게를 채취하였다. 멍게는 살아 있지 않으면 상품가치가 없기 때문에 채취하면 즉시 가까이 정박하고 있는 일본어선으로 팔아 넘긴다. 톤당 5000달러로 팔린다. 매상은 부대의 예산으로 된다. 
 그리하여 멍게를 많이 채취하는 가운데, 수심이 깊은 곳까지 나가지 않으면 채취할 수 없게 되었다. 무리하게 잠수하여 죽은 군인도 수십 명이다. 잠수병에 걸리며, 전신이 마비된 병사도 허다하다. 
 또한 보위사령부에서는 일본의 중고차를 한 대에 1000달러 전후로 수입하여, 정비한 다음 5000달러에 중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일본의 조총련으로부터는 김정일의 생일 건으로 매년 거액의 돈이 선물된다고 한다.〉 
 아편, 무기의 밀수로도 외화를 벌고 있다고 한다. 
 〈특수임무를 띄고 있는 「국가보위부」에서는, 아편재배도 하고 있다. 평양교외에는 「白도라지」라 불리는 대규모의 양귀비 농장이 있다. 
 국가정보원관계자의 이야기도 92년 10월 제대군인 일만 2천명이 「白도라지 농장」건설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무기밀수도 외화 획득의 커다란 수단이다. 
 북한 전문가 이항구씨의 試算에 의하면, 탄도 미사일 「노동1호」는, 리비아에 200기 팔렸다. 파키스탄에는 핵 관련 물질을 밀수한 것이 확인되었다. 또 북한은 450개의 군수공장을 가지고 있으며, 거의 대부분의 전력을 그곳에 소비하고 있다. 무기 생산 능력으로 보아서, 연간 10억 달러 정도의 무기 수출이 가능하다. 
 스위스 은행의 개인구좌를 확인 
 「제네바에서 열린 미북간의 미사일 협정(94년) 당시에, 미사일 개발중지의 대가로서, 북한은 3년간 30억 달러의 보상을 요구하였습니다. 북한의 무기 밀수액이 연간 10억 달러로 추정되는데, 무기수출을 단념하고, 그 補塡을 요구했다고 본다면, 금액이 딱 들어맞습니다.」(禹기자) 
 이러한 외화 획득을 통해서, 매년 막대한 비밀자금이 「39호실」로 모여들고 있다. 그것을 관리하는 것은, 39호실 산하의 「대성은행」이다. 
 모 북한 망명자는, 
 〈증언한 망명자는 김일성 대학 출신으로서, 대성은행의 해외지점에서 근무하였으며, 김정일의 개인재산을 관리하는 입장에 있었다. 「39호실이 관리하는 재산의 대부분은 스위스 은행에 있다. 85년에는 10억 달러 정도였으나, 95년에는 2, 3십억 달러로 되었다. 현재에는 4, 50억 달러로 불어났다.」고 했다. 
 美CIA의 조사보고서에는 「김정일이 숨겨 놓은 자산은 43억 달러」라고 하는 숫자가 확실하게 나와 있다.〉 
 禹기자가 입수한 정보기관의 문서에는, 오스트리아에 있는 「39 호실」의 더미(dummy) 은행 「GOLDEN STAR BANK (金星銀行)」의 기업 데이터나 담당 회계사, 稅吏士의 이름까지 나와 있다. 
 「39호실의 子회사는, 연간 매상의 30%를 충성의 증표로서 김정일에게 바치지 않으면 안 된다. 비밀자금의 규모에 있어서는, 43억 달러로 추정되고 있는 CIA의 리포트가 있지만, 또 다른 미정보기관 관계자는 『40억∼50억 달러의 범위』라고 말하고 있으며, 정확한 액수는 모른다. 모 미정부 고위관리는 『정확한 금액은 모르지만, 스위스은행에 김정일의 개인구좌가 있다는 것은 확인되었다』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비밀자금구좌가 존재한다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禹기자) 
 망명자들이나 정보기관의 증언뿐만이 아니다. 김정일 스스로가 비밀자금의 존재에 대하여 말했다고 한다. 
 「북한으로부터 망명한 신상옥 부부의 미발표 원고 중에, 비밀자금에 대해서 김정일이 신씨 부부에게 말했다고 하는 기술이 있는 것입니다.」(상동) 
 영하감독 신상옥과 여배우 최은희 부부는 1970년대에 홍콩에서 북한으로 연행되었으며, 그후에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한반도의 最大의 財閥二世 
 영화를 좋아하는 김정일을 위하여 어떠한 책도 영화로 만들게 하였는데, 김정일의 사생활을 항간에 본 극소수의 인물들이 있다. 그 경위는 신상옥 감독의 유일한 수기인 『北朝鮮』에 소상하게 나와 있다. 
 〈김정일은 해외자산에 이야기가 미쳤을 때에, 「자금은 여러 곳으로 분산시켜 두는 편이 좋은 것」이라고 申 감독에게 말했다. 계속해서 김정일은, 
 「우리가 은행구좌를 가지고 있는 곳은 오스트리아 비엔나 은행뿐만이 아니다. 내년에는 300만 달러의 예산을 들여, 가끔 해외로 나가서 서독에도 하나의 구좌를 만들고, 위장적으로 송금해서, 다시 다른 나라의 은행으로 송금할 계획도 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당장에 미국 정보기관이 알게 되어 버린다」고 말하였다〉(北朝鮮) 
 申 감독의 증언은 더 계속되어, 비밀자금을 관리하고 있는 김정일 측근의 존재를 밝히고 있다. 그 이름은, 권영록. 
 〈「權은 50대 중반인데, 3개의 여권을 갖고 있으면서 목적에 따라 달리 사용하고 있다.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으로 나가는 것은, 해외에 감추어 둔 자산의 현황을 점검하며, 김정일이 필요로 하고 있는 물품을 구입한다. 독일어에 능통하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KCIA관계자) 
 申相玉씨는, 83년 10월, 東베를린에서 權씨를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외교관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실제로는 김정일이 필요로 하고 있는 서독의 물자를 사모으는 총책임자였다. 한미간에 문제가 되었던 『헬리콥터 밀수사건』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키가 작으나, 좋은 사람이며, 서구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라고 생각하였다」〉(北朝鮮) 
 98년판 「북한인 명부」(대한매일신문사)에 의하면, 權씨의 직함은 조선노동당 자금담당 부부장으로 되어 있다. 70년대에 동독 대사관 1등 서기관을 경험하였는데, 그 당시부터 구주에 있어서의 비밀자금의 실질적인 관리 책임자였다고 한다. 
 「70년대 후반부터 동구담당 "김정일의 특파원"이었다. 김정일의 특별신임 아래 파견되어, 개인자산의 관리와 물품구입을 모두 맡겼다는 것이다. 權씨야말로 비밀자금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로서, 각국의 정보기관이 필사적이 되어 추적하고 있다.」(禹기자)
 또 스파이 양성에도 자금을 사용하고 있다는 흔적이 있다. 
 「중국의 북한과의 국경 부근에는 조선족이 많이 살고 있는데, 국가안전부에도 조선족 직원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노동당 해외조사부는 90년경부터, 이들 직원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月 5천∼1만 달러를 제공하는 대신에 중국의 대북정책과 방침 등을 제공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금년 1월, 조선족 직원이 북한으로 정보를 흘린 것이 발각되어, 일거에 20명이 체포되었고, 그후 전원이 처형되었던 것입니다.」 
 2월 5일, 평양의 중국대사관으로 김정일이 돌연 나타난 사건이 있었다. 김정일이 몸소 외국의 대사관으로 간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김정일은 체포된 조선족 직원에 대하여 온정적인 처분을 요청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굶주림에 고통을 받고 있는 민중들에게 외화획득을 강요하여 자신의 비밀구좌를 살찌우고, 신형무기구입이나 스파이 양성에 돈을 쓰고 있다 …. 禹기자는 말한다. 
 「스위스의 비밀자금을 개인자금으로 간주한다면, 김정일은 한반도 最大 財閥 2世로서 權閥 2世이다. 수백만 명의 인간이 굶어 죽으면서, 비밀자금을 쓰지 않는다면, 히틀러나 스탈린 이하의 독재자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이 받은 정치적 박해보다도 더욱 가혹한 인권침해가 북한에서 횡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12월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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