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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with Lee Won-seong, a staff member of for
Name: admin
2002-04-08 00:00:00  |  Hit 2035

 Interview with Lee Won-seong, a staff member of former Statistics Bureau Office of Public Information

3월 29일 전 공보처 통계국 직원이셨던 "이원성" 선생님과
인터뷰 한 내용입니다.(발견된 명단을 직접 작성하신 분입니다.)

다음은 1시간 정도의 인터뷰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한 부분입니다.



 이미일 회장님(이하 이미일): 1952년 이후로 추가로 작성한 명단은 있나?
 이원성 선생님(이하 이원성): 추가로 명단을 낸것은 없다.4권으로 작성된 것과 추가1권 총 5권으로 작성이 되었으며 추가로 작성은 하지 않았다.

 이미일: 1500여명정도의 명단이 더 있어야 하는데?1952년 명단이 맞나?
 이원성: 더 이상 조사를 하지 않았고 추가 명단도 작성하지 않았다.
명단이 맞다. 부산에 있을 당시 직접 오셔서 전부 면담을 통해서 작성한 것이다. 이산가족 문제로 해서 납북자 가족들은 작성한 명단에 대해서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명단은 6.25정전후 휴전회담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작성이 되었던 것이기 때문에 성심성의껏 기록을 했다. 중복명단은 다시 작성을 해야 했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납북자 가족들은 명단에 작성이 되면 꼭 돌아올줄 알고 있었으며 빠질 것을 염려해 다시 확인하기도 하였으며 부산에 있는 모든 등사기를 동원해 작업하느라 상당한 시간이 소요가 되었다.

 이미일: 현정부는 납북자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다.관계기관에 명단을 요청하였으나 없다는 회신뿐이었다.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원성: 제가 작성한 기억을 하면서 도서관에 가서 확인했더니 명단이 있어 10여년전에 복사해서 통우회(통계청 직원들의 모임)에 가져다 주었다.
복사본은 피살자명부, 납치자명부였다.

 이미일: 행방불명자 명부는 작성을 하지 않았나?
 이원성: 행불자 명부은 작성을 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모르겠지만 행불자 명단은 피살자명부나 납치자명부에 들어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미일: 행불자명부가 별도로 수십만명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원성: 행불자명부는 따로 조사 하지 않았다.

 이미일: 명단에는 월북자도 있을거라 생각을 하는데?
 이원성: 그럴수도 있다. 하지만 지방 행정기관에서 직접면담을 통해서 작성을 하도록 지시했기 때문에 자기가 직접 지원해서 월북한 가족은 그 자리에 아마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충분히 확인한 다음에 기록을 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이미일: 우리 식구가 잡혀갔다는 신고를 하지 않았으면 명단에 올라가지 않을 수도 있는가? 작성연도는 몇월쯤인가?
 이원성: 가족이 자진해서 했다. 빠질수도 있지만 그 당시 부산에서 신고접수에 관한 붐이 일어났었다. 몇월쯤인지는 기억에 없지만 1952년도와 1953년도 사이인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미일: 작성당시 통계국 직원이 많이 있었나?
 이원성: 직원은 별로 없었다. 한 10여명 정도였다.
모두 동원해서 작성을 했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고생을 하였다.

 이미일: 그 당시 직원들은 모두 생존해 계시는지?
 이원성: 그 당시 제가 제일 젊었었다. 그 당시 제가 30세였으므로 윗분들은 모두 돌아가신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미일: 본회는 후에 더 조사가 된 것이 있는지 궁금해서 방문하게 되었다.
 이원성: 유감스럽지만 후에 작성된 명단은 없다.

 이미일: 내무부 정보과에서 1954년도 작성한 명단은 통계청하고 연관이 없나?
 이원성: 관련이 없다.내무부 정보과에서 명단이 작성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미일: 성별,피해장소등 여러가지 항목으로 조사를 하였다. 여러권 작성을 하였나? 한부만 작성을 하였나?
 이원성: 비교적 자세하게 조사를 하였다. 10명이 작성한 명단을 원고로 해서 프린터 했으며 상당히 여러부 작성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미일: 중앙도서관에서 자료가 있는데도 보여주지 않다가 한 회원에 의해서 복사를 해오게 되었다. 공개를 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이원성: 공개를 해야한다. 내가 복사할때 아무탈 없이 복사를 해서 통우회에 13여년전에 가져다 주었다.

 이미일: 추가분은 어떻게 해서 작성이 되었나?서신으로도 접수를 했나?
 이원성: 서신으로 받았다. 가족들이 혹시 있나? 없나? 확인하려 왔다가 빠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추가로 명단을 기록한 것이다. 상황등을 상세하게 작성해서 서신으로도 접수를 했다.

 이미일: 통계청은 이렇게 열심히 명단을 작성했는데 그 당시 행정당국은 뭘 했는지?
 이원성: 정전후 휴전회담에 쓰기 위해 내놓았는데 얼마나 받아 들여졌는지 그 것은 모르겠다. 
 이미일: 말만하고 끝났다. 북에는 없고 자진해서 온 사람밖에 없다고 하고 회담은 그대로 끝났다.
 이원성: 납치자 명단에 명부가 적혀 있으니 증명서 발부를 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미일: 이유가 있다. 월북한 사람은 사상이 의심스럽지만 납북자는 완전히 다른경우다. 가족들은 연좌제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며 월북자 가족으로 대우 받기도 하였다.

 이미일: 제헌국회의원과 법조계에 있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이 잡혀 간 것으로 알고 있다.
 이원성: 서울에 남아있던 법관들은 모두 잡혀 갔다. 남한에 있던 좌익들에 의해 더욱 많은 인사들이 잡혀갔다.

 이미일: 좋은 일 해놓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 명단이 없었으면 어떠했겠는가?
 이원성: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을뿐이다.
 이미일: 그당시 정부는 납북자를 송환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송환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명단이 꼭 필요 했기 때문에 명단을 작성했을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미일: 북에서 명단이 없다고 하고 정부당국에서 명단이 없다고 하면 다시명단 신고를 받아 달라 얘기를 했다. 하지만 신고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하였으며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명단은 없다고 했다.
 이원성: 명단에 올라가 있었으면 가족들은 꼭 돌아 올거라 믿었었고 본인도 그럴거라 믿으면서 명단 작성을 했었다.

 이미일: 전국명단 82,959명을 DB작업을 하고 있다. 명단을 찾는데 어려움이 너무 많다. 
 이원성: 좋은 일을 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

 이미일: 작성 시기가 전쟁이 거의 끝나갈 시기였나?
 이원성: 그렇다. 

 이미일: 힘드신 와중에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이원성: 앞으로도 더욱 애쓰시고 좋은 일을 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해서 1시간정도 진행되었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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