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ident Lee contributed to Chosun Ilbo, Sept. 13, 2002 

2002년 9월 13일자 조선일보 기고문

[기고] 行不확인 시간이 없다 ...... 李美一

남북적십자회담에서 6·25 때 행방불명된 사람들의 생사확인을 하자고 북한이 먼저 제의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올해 팔순을 맞은 어머니는 만세를 부르셨다. 북한 정치부 요원이라는 사람들에게 아버지가 납치돼 간 후 50년을 한결같이 기다리며 집을 팔지 않고 지켜오신 어머니다. 전쟁 때 납치된 아들을 기다리는 88세 가족회원 할머니는 편찮아서 그동안 식사를 통 못하시다가 이 소식을 듣고 힘을 내야겠다며 식사를 하셨다고 한다. 

자식된 사람으로서는 아버지의 생사라도 알고 유해라도 송환해 오고 싶은 마음이지만, 남편을 기다리고 자식을 기다리는 분들 입장에서는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은 소망인 것이다. 그러니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다. 작년 가족들이 모여 단체를 만들 때 지방에서 먼 길을 마다않고 서울까지 올라오곤 했던 회원 중에는 그 사이 건강이 나빠져 바깥나들이가 불가능해진 분도 있고, 치매증세를 보이는 분도 있다. 

50년 세월이 얼마나 길었는지 새삼 실감하지만 모처럼 남북적십자사가 의기투합해 행방불명자 생사확인에 나서겠다니 이제라도 시간 낭비를 줄여주기 바라는 마음뿐이다. 

우리 단체는 그동안 북한으로 납치돼 간 사람들에 관한 기록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고서점이나 도서관을 찾아 헤매거나 국내외 전문가들을 수소문하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다가 1950년 12월 1일자로 대한민국 공보처 통계국에서 최초로 조사한 6·25사변 서울특별시 피해자명부를 고서적상에서 사들일 수 있었다. 납치자 2438명, 행불자·피살자 총 4616명의 명단이 꼼꼼한 필사본으로 기록돼 있었다. 이때부터 우리의 노력에는 가속이 붙어 1952년 대한민국 정부가 작성한 8만2959명의 명단도 찾아냈고, 1954년 내무부 치안국에서 작성한 1만7940명의 명단, 1956년 대한적십자사에 신고된 7034명의 명단, 그리고 6·25 직후 결성된 6·25사변납치인사가족회에서 작성하여 당시 국회의장 신익희씨에게 보낸 2316명의 명단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이 명단들은 오랜 세월 방치돼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통계청 자료실에서는 부주의로 ‘납치(拉致)’를 ‘입치(立致)’라고 적어놓은 바람에 컴퓨터 검색이 되지 않아 귀중한 명부의 존재를 모르고 넘어갈 뻔하기도 했다. 

우리 가족들은 그동안 여러 차례 북한에 납치된 가족의 생사확인을 요구하는 한편, 납치행위 자체를 신랄하게 비판해 왔다. 북한은 광복 후 “남조선에서 인테리를 데려올 데 대하여(46년 7월 31일. 김일성전집 4권)” 등의 문건에서도 확인되듯 국가건설을 위해 남한의 고급 인력이 필요했고, 전쟁기간에는 요인 납치작업을 계속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 인해 납치 피해자들과 우리 가족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세월을 보내야 했다. 

우리는 북한이 ‘납치’ 사실에 대해 일체를 부인하고 있고, 그것을 인정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제라도 북한당국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남한 체제에 위해를 가한 ‘비전향 장기수’들을 우리가 조건 없이 송환한 것처럼 ‘인도주의’ 차원에서의 고려가 가장 우선돼야 한다. 지금 시점에서 최고의 인도주의는 남북한 당국자들이 시간이 많지 않음을 인식하고 서둘러 주는 것이다. 정말 시간이 없다. 

( 李美一/사단법인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