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북한인권위원회는 지난 5월 북한이 6·25전쟁 이후 12개국에서 18만2000명을 납치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북한인권위는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가 납치를 지시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납북자 중에는 전쟁 당시 끌려간 한국인 8만2952명, 휴전 이후 납북된 어부 등 3824명, 일본에서 북송사업을 통해 건너간 총련 동포 9만3000여명, 일본인 17명 등이 포함돼 있다. 납북자 국적은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이다. 가히 ‘납치의 왕국’ 북한으로 불릴 만하다.

납북자 문제는 6·25전쟁이 남긴 큰 상처이지만 납치 규모가 정확히 파악돼 있지 않다. 기록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아서다. 우리 정부는 내무부 치안국의 ‘6·25사변 피납치자’ 등 1950∼1963년 발간된 명부 7종을 토대로 10만명을 웃돌 것으로 추산할 뿐이다. 지난해가 돼서야 6·25전쟁 납북진상규명특별법이 제정되고, 국무총리실 산하에 납북진상규명위원회가 설치됐다.

정부가 그제 6·25전쟁 중 발생한 납북 피해를 처음으로 공식 인정했다. 납북진상규명위가 전국 시·군·구를 통해 신고된 420명 가운데 55명을 전시 민간인 납북자로 결정한 것이다. 납북자는 제헌국회의원 6명을 포함한 정치인 8명과 공무원, 법조인, 농민, 자영업자, 학생 등 다양한 직업군으로 이뤄졌다. 납북 진상 규명이 시작 단계인데도 납치 당시 거주지가 서울, 충북, 강원, 경북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의 납치가 전방위적으로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대다수 전시 납북자는 안부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이들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의거 입북자들이 있을 뿐이라고 되뇌일 뿐이다. 정부도 남북관계 악화를 우려해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경우가 많았다. 남쪽에 남겨진 가족들은 주위의 몰이해로 ‘월북자 집안’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취업과 결혼에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제 납북자와 가족의 명예를 회복시켜 줄 때가 됐다. 10만명에 이르는 납북자 실태 파악이 우선이다. 무엇보다 고령의 납북자 생사확인과 귀환이 시급하다. 경색된 남북관계도 걸림돌이다. 인도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안경업 논설위원